섹션2. 중국


중국의 민주화와 천안문 항쟁

관리자 | 2019.11.22


“1989년 6월 베이징 천안문 학생운동의 모델은 바로 1987년 6월 서울의 학생운동(6월 민주화 항쟁)이었다”라고 답변한 우랄카이시(2010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류사오보의 제자, 1991년 당시 ‘민주중국전선’(망명정부)의 부주석)의 말처럼 한국의 시민운동은 세계 현대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제 2섹션은 1989년 6월 4일 중국 천안문 항쟁 전후를 조명함으로써 부마민주항쟁에서 광주민주항쟁과 6월항쟁을 거쳐 천안문 항쟁으로 이어지는 항쟁들의 유사성과 연관성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천안문 항쟁을 계기로 중국인들의 사고는 급격한 변화를 일으켰고, 이 변화는 중국의 영화들에도 잘 반영되고 있다. 첸카이거(‘황토지’), 장예모(‘붉은 수수밭’)등으로 대표되는 제 5세대 감독들은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폐쇄되었던 베이징영화학교가 마오쩌뚱 사망 후 1978년 다시 문을 열고 배출한 첫 졸업생들로서 덩샤오핑의 개방/개혁 정책의 혜택을 입은 세대다. 이들은 중국 영화의 부활이라는 강렬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전통 요소들을 적극 활용했다. 또한 문화혁명이라는 역사적 상황을 자신들만의 독특한 은유와 상징을 사용해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창조함으로써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제5세대 감독들이 중국의 역사와 민중의 삶에 대한 성찰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제6세대 감독들은 주로 도시의 삶을 배경으로 주변화된 인물의 개인적인 내면 심리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이것은 직접 천안문 사태를 경험한 제 6세대 감독들이 천안문 이후 달라진 중국의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을 보여준다.  


또한 대만 감독(차이밍량: ‘거기는 지금 몇 시니?’)들과 홍콩의 감독(왕가위: ‘중경삼림’)들은 중국 감독들과는 또 다른 그들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중국과 유럽의 관계 그리고 후기 식민지의 중국을 해석한다. 현재 홍콩의 대규모 시위는 역설적으로 한 세기에 걸친 영국의 지배하에서 길러진 개방적이고 자유민주주의적 아이덴티티가 중국의 중앙집권적 통제에 저항하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이 섹션에서는 제 5세대 감독(첸카이거, 장예모)의 영화 두 편, 제 6세대 감독(로우예, 지아장커)의 영화 두 편, 그리고 대만 감독(차이밍량)과 홍콩 감독(왕가위)의 영화를 각각 한 편씩 선정하여 중국이 겪고 있는 이러한 시대적 아픔을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