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위원장 인사말

제6회 창원국제민주영화제를 열며



2024년 제6회 창원국제민주영화제는 한 발짝 더 세계적 네트워크로 다가간다. 


예술영화전용관 씨네아트리좀과 창원국제민주영화제는 작년 2023년 8월 CICAE (Confédération Internationale Cinema d’Art et d’Essai 세계예술영화관연맹)에 가입했고, 이는 아시아에서는 최초이자 지금까지는 유일하다. 우리는 세계 각지의 예술영화관들은 어떤 사정 하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궁금했고, 나아가 하루라도 빨리 이들과 연대하고 협력 활동을 하고 싶었다. 


작년 이맘때 1주일간 베를린에서 개최된 ‘2023 아트하우스 시네마 트레이닝 (Arthouse Cinema Training 2023)’ 연수에 참가하여 맹훈련을 같이 함으로써 이 네트워크에 훨씬 더 가까워졌다. 올해 칸영화제 기간에 있었던 CICAE 총회와 워크숍 그리고 만남의 장 등에 참여해 세계 각국의 예술영화관들이 처한 사정과 예술영화관 정책을 알게 되었고, 각국의 국내 및 국제 네트워크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CICAE는 2024년 11월 17일을 ‘EACD2024 - 유럽 예술영화관의 날’로 정하여 ‘민주주의와 다양성’이란 주제로 세계 각처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행사를 올해 9번 째로 진행한다. 씨네아트리좀과 창원국제민주영화제는 올해 처음 이 행사에 참가하며, 이를 위해 ‘빔 벤더스 감독 특별전‘을 마련하였다. 빔 벤더스는 나치를 경험한 기성세대를 거부하며 독일 특유의 작가주의를 표방한 ‘뉴 저먼 시네마’의 주요 감독이다. 그의 작품을 통해 유럽적 감수성을 공유하고자 한다. 


사실 씨네아트리좀과 창원국제민주영화제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올해는 이 영화제를 쉬어갈 생각이 없지 않았다. 얼마 전 창원유랑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했고, 예산 확보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제란 일종의 환기창과 같아서 흐르게 하지 않으면 공기는 탁해지고, 이에 따라 지역과 관객도 그러할 것이다. 마침 '유러피언 아트하우스 시네마 데이' 제안이 왔고, 이를 계기로 환기창을 열기로 결정했다. 


EACD2024는 영화의 동시성에 주목한다. 실제로 영화는 전 세계 모든 곳에서 동시 상영이 가능하다. 올해 주제인 ‘민주주의와 다양성’은 지구상의 인류 모두의 염원이자 합의이다. 이 표제는 역으로 ‘독재와 획일성’의 거부를 표현한다. 이날 전 세계 약 42개국 900여 개의 예술영화관에서 ‘민주주의와 다양성’에 대해 생각하며, 영화관과 관객들이 세계적으로 연대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 동시성 덕분에 국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일국 내에서 지방과 수도권 사이의 정보 수용 격차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지구 어디에서든 동시대인들의 삶의 양식과 고민거리 그리고 그 해결방식을 공유할 수 있다. 가보지 않은 곳까지 알 수 있고, 심지어 그 내면까지 만날 수도 있다. 그리고 글로벌 주요 이슈를 적시에 접한다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예술)영화는 수용자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고,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하고, 새로운 정보를 얻게 하고, 감성으로 사물과 사람을 익히게 한다. 영화는 현대성, 정보성, 시사성, 예술성, 문화적 토양을 아우르며, 기술과 산업까지 포함하며, 문화와 예술 그리고 시대를 표현하는 가장 중심적인 매체이다. 이제 막 도래한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영화는 새로운 시대를 관찰하고 나아가 그 방향을 잡아가는 데 있어 가장 적절한 소통의 수단이 될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제작자가 내놓고 관객이 완성하는 매체이다.


예술영화관이 중요한 것은 영화의 상업적인 관람을 넘어 각 지역에서 이러한 필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물리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현재 프랑스가 1,200여 개의 예술영화관으로 정보 제공과 문화거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면, 한국에서는 예술영화전용관 20여 개와 독립영화전용관 10개, 합쳐서 30개 남짓한 영화관이 이 모든 역할을 맡고 있다. 경남의 경우 330만 명의 인구를 위해 51석의 ‘씨네아트리좀’ 1개관이 그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이 각지에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정부의 영화관 중심의 영화문화 활성화 정책도 크게 미약한 수준일 뿐만 아니라 지자체들의 영화전용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지역별로 그 편차가 더욱 크다. 비근한 예를 들자면, 부산시민들은 다행히 부산시가 받쳐주는 ‘영화의 전당’을 이용할 수 있지만, 경남도민과 창원시민은 민간이 근근이 운영하고 있는 ‘씨네아트리좀’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경남도와 창원시는 수익 창출이 어려운 공공 역할을 수행하는 예술독립영화전용관을 민간에게 맡겨둔 채 프로그램의 실행은 물론 영화관 운영을 위한 어떤 지원도 하지 않고 있다. 


안타깝게도 가장 열악한 상영환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지자체의 공공 지원에서 국내에서 가장 철저한 소외와 가장 완벽한 무관심을 받고 있는 곳이 바로 씨네아트리좀이 소재한 경상남도이고 창원시인 것이다. 경남도와 창원시의 모든 관련 부서, 관계자, 담당자에게 수년에 걸쳐 몇 번을 설명해도 마이동풍이고 요지부동이다. 이곳은 마치 현대를 사는 지역이 아닌 것 같다. 영화 관련 예산이 경남도는 9,000만 원, 창원시는 8,000만 원이라고 한다. 도나 시의 행정부는 그렇다 치더라도 예산 심의권을 가진 도의회와 시의회는 도대체 어떤 노력을 했던 것일까? 이런 현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굳이 상황을 이해하자면 경남도의 경우 김두관 전 지사가 만들었던 콘텐츠진흥원과 영상위원회를 홍준표 전 지사가 없애버리는 무지막지한 문화정책적 만행이 일어났고, 창원시의 경우 안상수 전 시장이 여론에 밀려 씨네아트리좀에 제공했던 영사장비 임대료 지원을 그 필요성 여부도 검토하지 않고 허성무 전 시장이 중단시켜 버리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러한 조치들이 잘못된 조치임을 알고 있는 담당자들은 이를 해결해야 함을 잘 알지만 이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마치 도지사나 시장의 권력에 도전하는 것으로 생각해 주저하고 두려워한다. 담당자들은 몇 시간에 걸친 설명으로 상황의 심각성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하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만 대답한다. 왜? 왜 할 수 없지? 오늘날과 같은 시기에 100만이 넘는 특례시의 장이 영화문화의 중요성을 모른다고 믿기는 어렵다. 혹시 그 반대는 아닐까? 설마 몇 년 전 블랙리스트 사태처럼 시민의 의식 제고와 진실의 확산을 두려워하는 층이 이를 저지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비현실적인 생각마저 든다. 


결국 이 지역은 계속해서 민의 혈과 고를 짜낸다. 10년째 월급 한 푼 없이 적자가 누적되며 예술영화관을 운영하고 있어도, 6번의 영화제를 개최하고 있어도, 그리고 이 활동이 그 어느 영역보다 공공성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이 지자체는 내몰라 한다. 우리 지역민 대부분은 씨네아트리좀이 수익을 낼 수 없는 게 뻔한데도 여전히 굴러가고 있는 것은 공공 지원을 받고 있거나 지자체 위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다. 실제로 전국의 예술영화관은 예술독립영화 상영의 수익구조에 어려움을 견디는 대가로 영진위로부터 대관료 형식의 지원을 받아 명맥을 잇고 있다. 하지만 지역에 바탕을 둔 영화관이 지역민을 위한 제반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지원해야 하고 대부분의 지자체가 이를 지원한다. 유독 경상남도와 창원시만 이를 방관하고 있다.


창원국제민주영화제는 지역의 특성과 정체성, 역사를 통해 쌓아 올린 자존감을 더욱 굳건히 하고 지속시켜 후대에게 이 지역에 산다는 자긍심을 갖게 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 확신한다. 민주주의의 성지에서 펼쳐지는 향연에 세계인의 동참을 끌어내고 한국이 이룬 지금의 성과를 함께 향유하는 방법을 강구함과 동시에 이를 위해 그동안 지난한 과정을 거쳐왔음을 잊지 않고자 한다.


내가 선 자리가 어떤 곳인지는 나만 보고는 알 수 없다. 세계 속에 나를 두어야만 제대로 나를 볼 수 있다. 그러려면 동시대에 다른 곳에서 사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불가결하다. 아마 문제 해결책도 없이 이미 벌어져 있는 격차를 절감한다는 고통이 따를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처한 상황의 처참함이 좀 더 직접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는 해결 의지에 불을 지피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민주화도, 선진화도 그리고 한류도 만들어 왔지 않은가. 방법을 찾을 것이고,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창원(마산)은 3.15의거, 10.18부마민주항쟁, 6월항쟁의 도시 역사에 걸맞은 문화적 자존감으로 문화적 성숙을 기해야 할 시점에 있다. 이를 현대적 소재와 방식으로 이루고자 하는 노력에 대해 상상을 초월하는 무관심과 방해가 난무하는 지역이긴 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이 지역에는 ‘문화 민주주의’의 실현이 그만큼 더 시급하고 또 간절하다. 영화라는 특정 분야의 활성화를 저지하려는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경상남도와 창원시는 우선 영화문화 예산을 적어도 한국 전체의 평균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 더 이상 민의 고혈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현대는 도서관 100개보다 예술영화관 1개가 더 필요한 시대이다.”


이번 영화제를 위해 특별히 헌신과 열정을 아끼지 않으신 권유리, 정민, 이윤영 세 프로그래머와 큐레이터께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하효선

창원국제민주영화제 집행위원장

CICAE 한국대표위원

한국예술영화전용관 부회장

예술영화전용관 씨네아트리좀 대표